이징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판우군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종실.
이칭
  • 시호양정(良靖)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435년(세종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우군총제|중군도총제|경상좌도병마절제사
  • 출생 연도1375년(우왕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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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판우군부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종실.

개설

본관은 전주이다. 아버지는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87년에 산원(散員)이 되었고, 이어 낭장·장군 등을 거쳐 원윤(元尹)이 되었으나, 1402년(태종 2)에 불미스런 여자문제로 인하여 순위부에 감금되기도 하였다.

1412년 우군총제가 되었고, 그 해에 삼군설치 이후에는 우일번절제사(右一番節制使)로 별사금제조(別司禁提調)를 겸하였다. 이듬해에는 병마사가 되었는데 적서와 존비·귀천의 구별없이 왕족이라는 특혜로 내린 칙서로 불평을 사기도 하였다.

1414년 도총제 재임 시 진하사(進賀使)의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17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거쳐 이듬해는 좌군도총제를 역임하였다. 세종 때에는 중군도총제를 거쳐 경상좌도병마도절제사를 역임하였다.

이어 다시 중군도총제로서 절일사(節日使)의 임무를 띠고 명나라에 다녀온 뒤 유후사(留侯司)로 개성을 거쳐, 황주·평양 등지의 선위사 임무를 수행하였다. 1429년(세종 11) 판좌군부사(判左軍府事)가 되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는 도중에 노루사냥을 한 죄로 외방으로 쫓겨났다가 1431년에 직첩을 다시 받고, 그 해에 판우군부사가 되었다.

이어 판중추부사가 되었다가 1435년에 죽었다. 아버지가 서출이기는 하나 종친인 관계로 최우대를 받으면서 무관의 고위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참고문헌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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