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좌승지, 도승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여휴(汝休)
  • 시호정청(靖淸)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신임사화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723년(경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정랑|병조참의|형조판서
  • 출생 연도1641년(인조 19)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순만 (제주농민교육원, 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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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좌승지, 도승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휴(汝休). 이성윤(李誠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방(李庭芳)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민정(李敏政)이며, 어머니는 한득일(韓得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3년(현종 4) 진사시에 합격하고, 1676년(숙종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정언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다. 그는 당시 병조판서 남구만(南九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병조의 공무를 위임받아 처리하였다. 그는 모든 물량을 정제(定制)대로 출납하였으므로 그 이듬해에는 재용이 매우 풍부하여졌다.

이 때문에 3년 동안 자리를 바꾸지 않았으며 남구만의 천거로 1685년 병조참의에 승진하였다. 그밖에 장령·수찬·헌납·목사·필선·사간·집의·응교·보덕·부승지·좌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형조판서에 오르고 1721년(경종 1)에 지돈녕부사 등 노인직을 맡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신임사화 때 소론에 의하여 직첩이 환수되었다가 영조 즉위 뒤 복직되었다. 서예에 능하였으며 허목(許穆)이 지은 길성위(吉城尉) 권대임(權大任)의 비문과 민창도(閔昌道)가 지은 허잠(許潛)의 비문 등을 썼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번암집(樊巖集)』(채제공(蔡濟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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