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휴(汝休). 이성윤(李誠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방(李庭芳)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민정(李敏政)이며, 어머니는 한득일(韓得一)의 딸이다.
1663년(현종 4) 진사시에 합격하고, 1676년(숙종 2)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정언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었다. 그는 당시 병조판서 남구만(南九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병조의 공무를 위임받아 처리하였다. 그는 모든 물량을 정제(定制)대로 출납하였으므로 그 이듬해에는 재용이 매우 풍부하여졌다.
이 때문에 3년 동안 자리를 바꾸지 않았으며 남구만의 천거로 1685년 병조참의에 승진하였다. 그밖에 장령·수찬·헌납·목사·필선·사간·집의·응교·보덕·부승지·좌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고 형조판서에 오르고 1721년(경종 1)에 지돈녕부사 등 노인직을 맡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신임사화 때 소론에 의하여 직첩이 환수되었다가 영조 즉위 뒤 복직되었다. 서예에 능하였으며 허목(許穆)이 지은 길성위(吉城尉) 권대임(權大任)의 비문과 민창도(閔昌道)가 지은 허잠(許潛)의 비문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