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좌참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성방(聖方)
  • 시호익헌(翼獻)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772년(영조 4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참판|도승지|형조판서
  • 출생 연도1704년(숙종 3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오갑균 (청주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명현화상 중 이창의 초상 미디어 정보

명현화상 중 이창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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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좌참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방(聖方). 세종의 아들 영해군 이당(寧海君 李瑭)의 후손이며, 이백린(李伯麟)이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언강(李彦綱)이고, 아버지는 참봉 이태제(李泰躋)이며, 어머니는 송징은(宋徵殷)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세자시강원설서로 초사(初仕)하였으며, 1737년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을 거쳐 이듬해 문학이 되었다. 1740년 홍문관교리, 수찬을 역임하고, 이듬해 북도독운어사(北道督運御史)가 되어 북도의 기민 구제를 위한 진곡(賑穀) 1만곡을 수송하였다.

1744년 장령·검상을 거쳐 승지가 되었으며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다. 1747년 충청도관찰사, 이듬해 병조참판·동의금을 거쳐 1749년 진하겸 사은부사로 연경(燕京)을 다녀와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형조·호조참판을 거쳐 1752년 예조참판이 되어 동지 겸 사은부사로 다시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와 호조참판·도승지·형조판서·호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754년 판의금부사·병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광주유수(廣州留守)가 되었고, 1756년에 좌참찬, 1759년 이조판서에 이어 함경도관찰사·병조판서·경기도관찰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764년 예조판서·좌참찬을 거쳐 1767년 다시 병조판서로 좌빈객을 겸하고 이듬해 호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가 판중추부사로 옮긴 뒤 파직당하였다. 1772년 다시 우의정에 기용되었으나 곧 판중추부사로 옮겨 재직중 죽었다.

그가 죽자 부인은 단식하다가 절명하였고, 열녀로 정문이 세워졌으며 영조가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시호는 익헌(翼獻)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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