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징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북청부사, 정언,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민(景民)
  • 자호재(自好齋)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유백(李有白)의 대역부도죄 사건
  • 본관간성(杆城)
  • 사망 연도1782년(정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북청부사|정언|장령
  • 출생 연도1715년(숙종 4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일 (성균관대학교, 독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자호재문집 미디어 정보

자호재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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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북청부사, 정언,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간성(杆城). 자는 경민(景民). 호는 자호재(自好齋). 이배근(李培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만번(李晩蕃)이고, 아버지는 이흥상(李興商)이며, 어머니는 신기(辛耆)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8년(영조 1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45년(영조 21) 장령으로 처음 부임하였다. 1750년 북청부사(北靑府使)로서 치적이 일도에서 가장 뛰어나 포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 뒤 정언·장령을 거쳐 1753년 광주경력(廣州經歷)을 역임한 뒤 장령으로 다시 등용되었으나 곧 파직당한 뒤 한동안 등용되지 못하였다. 1761년 재등용되어 오랫동안 장령을 지냈다.

1782년(정조 6) 장령으로서 차대(次對: 매달 여섯 차례씩 의정, 대간, 홍문관의 관원들이 대궐에 들어가 중요한 정무를 왕에게 아뢰던 일)에서 15조항의 계문(啓聞)을 올리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그 해 5월 왕의 명령에 응한 상소문이 이유백(李有白)의 대역부도죄 사건과 관련되어 봉조하(奉朝賀) 이최중(李最中), 그리고 그의 조카인 이의익(李義翊)과 함께 신문을 받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1801년(순조 1) 복관(復官)되었으며, 흩어져 유배되었던 자들도 석방되었다. 문집으로 『자호재문집(自好齋文集)』이 전한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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