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칭
시호
경무(景武)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637년(인조 15)
본관
함평(咸平)
주요 관직
훈련도감|포도대장|평안도병마절도사
관련 사건
인조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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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정사공신 3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개설

본관은 함평(咸平). 갑산부사 이윤탕(李允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좌참찬 이염(李琰)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수원(李守元)이며, 어머니는 김해허씨(金海許氏)로 별좌(別坐) 허임필(許霖弼)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 북방을 지켰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에 훈국장관(訓局將官)으로 공을 세워 당상관으로 가자되고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며 함녕군(咸寧君)에 봉해졌다.

장단부사가 된 뒤 계속 승진하여 내직으로는 훈련도감·포도대장, 외직으로 충청도·경기도·함경도·평안도병마절도사 등 주로 북방지방의 병사를 10년간에 3차나 역임하였다.

1636년 12월 청병의 침입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에 몽진하였을 때 종성의 행영(行營: 장군 등이 출정하여 임시로 멈추는 곳)에 있다가 청병의 침입소식을 듣고 서울로 달려왔으나 군대를 이끌고 진(鎭)에 돌아가라는 왕명을 받았다.

대간들이 서울 구원이 늦은 장수들의 죄를 추론(追論)할 때 각 도 장수들과 함께 파직되어 곽산 능한성(凌漢城)에 유배되었다가 수개월 만에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인조는 그가 죽자 슬퍼하며 그의 관직을 복구시켰다. 김진규(金鎭圭)가 묘갈명을 지었다. 시호는 경무(景武)이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지천집(遲川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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