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장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병조참지,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성보(誠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74년(경종 4)
사망 연도
1728년(영조 4)
본관
전주
주요 관직
의주부윤|병조참지|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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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의주부윤, 병조참지,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보(誠甫). 헌납(獻納) 이형(李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영휘(李永輝)이고, 아버지는 이택(李澤)이다. 어머니는 김여남(金汝男)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9년 남원현감을 지냈다. 1722년(경종 2)에는 부수찬(副修撰)·부교리(副校理)·수찬(修撰)을 역임했으며 이듬해에는 교리(校理)를 역임하였다.

1724년(영조 1)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지내면서 그 곳이 국방 요지임을 강조하고 아울러 보다 합리적인 정책을 시행하여 만전을 기할 것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책문(柵門)과 소곶관(所串館) 사이의 7대참(大站)을 의주부의 독단으로 담당하기에는 문제점이 있으므로 이에 대해 우휼지전(優恤之典: 두터운 은혜를 베풀어 구제하는 방법)의 시행과 구적(舊糴: 지난 날의 갚아야 할 환곡)의 탕감 및 오래 근무 가능한 장교(將校) 선발 등과 같은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둘째, 백마산성(白馬山城)으로 읍을 옮기든가 아니면 무기와 군량만이라도 이송하여 청야법(淸野法: 들판의 온갖 곡식을 거두거나 가옥을 철거하여 비상시 적의 양식 또는 근거지를 빌미를 주지 않게 하는 법)을 실시,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

셋째, 의주부는 기타 지역과는 달리 평원이 많고 직로(直路)이므로 거자고(車子庫: 운송 수단의 보관을 위한 창고)를 설치하여 평시에는 방물이라든가 각 읍의 쇄마(刷馬: 각 지역에 관용으로 배치한 말)를 운반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유사시에는 전차를 사용하여 적을 격퇴할 수 있는 방어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1727년에 병조참지(兵曹參知)를 지냈으며, 이듬해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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