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정언, 성균관전적, 병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01년(선조 34)부터 감찰, 병조좌랑·경기도사·예조좌랑·정랑 등을 거쳐 1604년(선조 37)에는 평안도평사로 파견되었으나 인물이 합당하지 않다는 헌부의 탄핵으로 교체되었다. 이듬해 충청좌도 시관(試官)으로 파견되었다가 정언·성균관전적·병조정랑 겸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선조 39) 천추사(千秋使) 홍경신(洪慶臣)을 따라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 왔다. 선조가 죽자 병조정랑으로『선조실록』편수관으로 참여하였다. 또 산릉도감 감역관(監役官)의 공으로 상현궁(上弦弓) 1정이 하사되었다.
1610년(광해 2) 지평에 제수되었다. 1621년 명청교체기의 위기 속에서 모문룡(毛文龍)의 접반관으로 파견되었다가 여진의 습격을 받아 도망했다는 이유로 국문을 당하였다. 인조가 즉위한 뒤 장령(掌令)·필선·집의 등의 관직을 지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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