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초명은 이서(李墅). 자는 화백(和伯)·도옹(賭翁). 이종학(李種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숙야(李叔野)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이축(李蓄)이며, 어머니는 형조판서 서선(徐選)의 딸이다.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사위이다.
1439년(세종 21) 11세에 처음으로 벼슬에 올라 사직이 되고, 수년 내에 정3품직에 올라 제용감·군자감의 판사를 거쳐 판전농시사가 되고, 1460년 공조참의, 1462년 한성부윤·형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가 함경도에서 난을 일으키자 토평대장이 되어 적의 진로을 차단하였다. 이듬해 경기관찰사가 되어 민정을 잘 다스렸고, 이어서 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
1471년(성종 2) 성종 즉위에 공이 크다고 하여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고 한성군(韓城君)에 봉하여졌다. 이후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거쳐 의정부좌참찬에 이르렀다. 시호는 안소(安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