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효순(孝純). 숙전(叔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간(玕)이고, 아버지는 옥형(玉衡)이며, 어머니는 김지경(金之慶)의 딸이다.
1513년(중종 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523년(중종 18) 사헌부지평을 지냈으며, 이듬해에는 부교리(副校理)·교리(校理)·헌납(獻納)·부응교(副應敎)로서 역임하면서 대간(臺諫)이 위로는 임금의 이목을 바르게 해 주고 아래로는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였다.
1526년에는 장령(掌令)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무단 결근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주장하였다. 1529년에는 교리를 역임하였다. 당시 사관(史官)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즉, 음사(陰邪)와 시기가 심하여 주위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으며, 무인(武人) 이장길(李長吉)과 친밀하였기 때문에 “이항(李沆)의 가신(家臣)이며, 이장길의 양자(養子)다.”라는 조롱을 받았다고 평하고 있다. 이듬해에는 장령을 지냈으며, 1531년에는 대간에 의해 배척받음으로써 체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