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지부사, 이조참의,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 해 홍문관(弘文館)에 등용된 후 보덕·강릉부사·사간(司諫)을 지내고, 1698년 시독관(侍讀官)으로서 사전(私錢)의 주조를 엄금하도록 건의하였다. 그 뒤 승지를 지내고, 당쟁은 나라를 망치게 하는 근원이라 하여 배격하였다.
1702년 강원도관찰사 때 양구현 등 여러 군현이 사옹원(司饔院)에서 그릇을 굽기 위해 요구한 백토(白土)의 상공(上供)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양구 지역의 백토가 고갈되어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는 점을 상소해 면제받도록 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듣기도 하였다. 또한 대사간 때 정식(鄭栻)이 이이명(李頤命)·조태채(趙泰采)를 탄핵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 사건을 편협하게 처리한 사간 윤헌주(尹憲柱)를 탄핵해 파직시켰다.
그리고 신완(申琓)이 사복시(司僕寺)를 관장할 때 간사한 무리의 말을 듣고 당진·태안의 민전(民田)을 빼앗자, 그를 탄핵해 백성들에게 되돌려주게 하니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705년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이조참의가 되고, 이어 호조참판을 거쳐 1707년 개성유수가 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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