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4월 7일 서재필(徐載弼)의 주재 하에 한성 정동배재학당 구내에서 창간된 『독립신문』의 4면에 실렸다. 이 신문은 국내사정을 외국에 정확히 알림으로써 우리 민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꾀하고 대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하여 발행되었다.
체제는 평판(平版) 중형(35×23㎝)의 3단제(三段制)로 간행되었으며, 신문값은 1부당 1센트, 1년분 1달러 3센트로 매호 300부씩 발행되었다. 내용은 사설(editorial)을 맨 앞에 싣고, 이어 내보(local items)·관보(governmental gazette)·외신(latest telegrams) 등을 실었다.
1897년 1월 5일자부터는 『독립신문』의 영문판과 분리되어 격일간 4면으로 발행하였으며, 이에 따라 신문값은 1부당 5센트, 1년분은 6달러로 인상되었다. 또한, 편집체제도 바뀌어 1면에 광고와 외신, 2면은 사설·관보·내보, 3면은 정부부처 소식(departmental news), 독자통신(correspondence), 단명(note), 알림(notice) 등을, 4면은 광고를 게재하였다. 한편 1897년 3월부터는 영국의 로이터통신과 독점계약을 체결하여 기사를 공급받았고, 영어, 프랑스어, 일어 등 여러나라 신문 20여 종을 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디펜던트』는 1898년 11월 29일자를 발행한 후 휴간에 들어갔는데, 휴간을 알리는 사고(社告)에서는 이유를 밝히기 어려운 사정으로 말미암아 당분간 휴간할 수 밖에 없지만 빠른 시일 안에 속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1899년 6월 1일 영국인 엠벌리(Emberley, 音法里 혹은 顔布榮으로도 표기)가 사장에 취임하면서, 6월 8일에 주간으로 『인디펜던트』의 속간이 이뤄졌다. 그리고 8월 31일 발행된 신문(제 13호)에서 주 1회 발행은 이번 호가 마지막이 될 것이고 앞으로는 주 2회 발행(화요일과 금요일)으로 발행회수를 늘리겠다고 발표하였지만, 제 14호는 9월 14일에야 발행되었고 그 이후부터 『인디펜던트』의 발행은 중단되었다. 결국 1899년 12월 4일『독립신문』의 폐간과 함께 종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