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말이나 행동·표정·선물 등 여러 방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인사의 일반적인 기능은 사람들 사이의 소원·단절을 막고 사람들 사이에 우호감을 낳게 하며, 집단 성원들간의 연대를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이 밖에 당시의 사회적인 위계서열을 나타내는 지표구실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사는 민족·시대·계절·시간·조건·계급·신분·종교·직업·연령·성별 등에 따라 각기 구분이 있어 행동양식을 달리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예를 중시하여 이에 따르는 인사법도 아침·점심·저녁이 다르고 상봉·이별·문안·안부·경조 등에 매우 까다로운 인사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사법은 ≪상례 常禮≫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근래에는 서구문물의 영향으로 인해 많이 생략, 변질되었고 한편으로는 악수·포옹과 같은 서구식 인사법도 행하여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인사의 방법은 말로 하는 인사, 행동으로 하는 인사, 서신으로 하는 인사, 선물로 하는 인사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들 각각이 독자적인 인사양식을 이루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 중 몇 가지가 한데 어울려 하나의 인사양식을 이루는 것이 보통이다.
인사는 그것이 행하여지는 조건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양태로서 표현되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생활과정에서 행해지는 기본적인 인사양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말로 하는 인사
말로 하는 인사는 흔히 ‘입인사’라고도 한다. 말로 하는 인사는 교분관계나 조건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① 한 동네 또는 집단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나누는 인사말: 만나는 시간에 따라, 아침식사 전에는 ‘밤새 안녕하신가?’, ‘밤새 잘 지냈나?’, ‘밤새 잘 잤는가?’, ‘잘 잤나?’라고 한다.
아침식사 뒤에는 ‘진지 자셨나?’, ‘밥 먹었는가?’, 저녁 때 헤어질 때에는 ‘잘 자게.’, ‘편히 쉬게.’ 등으로 인사말을 나눈다.
또한, 평상 헤어질 때에는 ‘잘 있게.’, ‘잘 가게.’, ‘살펴 가게.’, ‘조심해서 가게.’, ‘또 보세.’, ‘또 만나세.’, ‘멀리 못 나서네.’라고 한다.
평소 노상(路上)에서 만났을 경우에는 ‘어디 가는가?’, ‘어디에 좀 가네.’, ‘일 좀 보러 가네.’, ‘잘 다녀오게.’ 등으로 인사말을 나눈다.
이러한 인사말들은 성인남자들이 평소에 친분 있는 동년배와 나누는 인사양태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연장자나 연소자를 대할 경우에는 각각 존댓말과 하대말로 바꾸어 하게 된다.
여자들끼리의 인사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날에는 이웃간이라 할지라도 장성한 남녀는 서로 내외를 하였기 때문에 남녀간의 인사법은 특별히 발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남녀간에도 위에서 제시한 예에 준하여 인사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평상시 인사말은 취식여부(取食與否)와 신변안부에 관한 물음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인사말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교환되고 있다.
② 다른 지역에 살면서 오랜만에 방문하였을 때의 인사말: 서로 벗으로 사귀는 경우에는 ‘오래 적조하였네.’, ‘몰라보게 되었네.’, ‘여전하네 그려.’, ‘댁내 다 무고한가?’,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네.’, ‘어떻게 지냈는가?’, ‘신색이 많이 달라졌네.’, ‘이게 얼마 만인가?’ 등으로 인사를 나눈다.
서로 존대하는 사이의 경우에는 말의 내용은 위와 같으나, 존댓말로 하며 경우에 따라서 맞절을 하기도 한다. 이 때 상대방 부모의 안부를 먼저 묻는 일도 많았다.
③ 연령상 신분상 하층배가 상층인을 방문하였을 때의 인사말: ‘어르신네(○○○양반·생원님·진사님·초시 어르신), 아무개가 사뢸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또는 ‘어르신네, 아무개가 여쭐 말씀이 있어 문안드립니다.’ 등이 있다.
이러한 인사말은 봉건적 신분제 사회에서 주로 사용되던 것으로, 오늘날에는 대상에 따라 표현을 달리하면서 쓰이고 있다.
④ 처음 만났을 때의 인사말: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 알고 지냅시다.’, ‘뉘댁이시오? 우리 수인사(修人事)합시다.’, ‘고명(高名, 또는 성함)은 익히 듣고(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명함을 건네주면서 ‘이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아무개올습니다.’, ‘아무개라고 불러주시오.’, ‘아무개씨로부터 소개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반갑습니다).’ 등이 있다.
⑤ 경조사에 임하여 하는 인사말: 경우에 따라 제각기 인사방식이 다른데, 설날 세배를 드리면서 인사할 때에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수명장수하십시오.’, ‘뜻하시는 일 모두 성취하십시오.’라고 한다.
생일·승진·입학·취직·합격·결혼 등의 경사로운 일이 있을 때에는 ‘축하합니다.’, ‘행복하십시오.’ 등등의 덕담을 주고받는다.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상사(喪事)말씀 무어라고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상고(喪故)를 당하시어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천수(天壽)를 다 누리셨으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라는 등등의 말을 아주 낮은 소리로 하여야 한다. 그리고 경조사에서의 인사는 대부분 입인사뿐만 아니라 절이나 선물 등의 인사와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⑥ 혼정신성(昏定晨省: 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핌)의 인사말: 혼정신성은 옛날 우리 나라 가정 내의 중요한 인사법 중의 하나였다.
부모와 조부모를 모시는 아들과 손자들은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렸는데,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펴드리고 절을 하면서 ‘안녕히 주무십시오.’라 하고, 아침에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절을 하면서 아침문안을 드리고 이부자리를 걷어 개어놓는 인사법이었다.
이 풍습은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의 일상생활이 극도로 급박해지고 핵가족화되면서 자취를 감추어 이제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2) 행동으로 하는 인사
행동으로 하는 인사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절이다. 연소자·하위자가 연장자·존장자·상위자에게 경건한 태도로서 인사할 때 절을 하게 된다. 절에는 입례(立禮)·반절 또는 읍(揖)·큰절 등이 있다.
① 입례: 옥외나 노상에서 서서 양손을 배 윗부분에 쥐고 허리를 약간 구부려 인사하는 것인데, 이는 친숙한 존장자를 만났을 때 하는 인사법이다.
② 읍(揖) 또는 반절: 삼국시대 이래 개화기까지 우리 나라의 가장 보편적인 인사는 읍(揖)이었다. 허리를 굽혀 두 손을 맞잡고[揖手] 올린 다음 상하 좌우로 조절함으로써 공경도를 높이는 인사법이다.
가슴높이[土揖]·입높이[時揖]·이마높이[天揖]의 3단계로 높이는데, 어느 부위에서 멎는가에 따라 공경도가 달라진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서열형태는 생략되고, 대체로 양손을 쥐고 가슴 부분에까지 올려 고개를 약간 수그리는 것을 통상 읍이라고 한다.
한편, 요즈음 같이 공수(拱手)를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는 인사법은 개화기 이후에 생겨난 최근의 풍조이다. 반절은 양손을 배 윗부분에서 쥐고 고개를 약간 수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반절이나 읍은 대체로 큰절을 한 후 일어서서 하는 절이다. 특히, 읍은 흔히 제사지낼 때나 특수한 절을 할 때 사용되고 있다.
③ 큰절: 절 가운데에서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인사법이다. 이 절은 실내에서 하는 것이 상례이나, 특별한 경우 바깥에서 할 때에는 자리를 깔고 그 위에서 한다.
큰절은 남녀의 양식이 각기 다르다. 남자의 경우, 상대자의 정면에 서서 양손의 끝을 모아 팔(八)자형으로 하여, 이 양손을 방바닥에 짚고 무릎을 꿇어 코가 방바닥에 거의 닿을 만큼 허리를 구부린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을 두었다가 서서히 허리를 펴서 일어나 선 채로 다시 반절을 한다. 절을 받는 존장자가 앉으라고 지시할 때까지 서서 있어야 한다.
한편, 여자의 경우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다. 그 하나는 상대편의 정면에 앉아서 양손을 양옆으로 짚고서 허리를 구부리는 절이다.
다른 하나는 양손을 모아 이마에 대고 앉아서 양손이 방바닥에 거의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구부려서 하는 절이다. 이 둘 중 후자의 것이 더 정중한 것으로 본다. 여자도 절을 하고 나서 그대로 서서 존장자가 앉으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남자의 경우와 같다.
큰절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만 하지만, 제사 때나 고인조문(故人弔問) 때와 같이 죽은 대상에게는 재배(再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편, 귀한 손님이나 존장자가 방문하였을 경우 바깥에서 입례하였어도 실내에 들어와서 손님이 좌정하면 큰절로써 다시 인사하는 것이 올바른 인사예절이다.
(3) 서신으로 하는 인사
서신을 교환하여 의사를 표명할 때에는 용건을 말하기에 앞서 상대방에게 대해서 계절에 따른 건강상태나 그 집안의 안부를 묻는 인사말을 쓰게 된다.
과거에는 서신으로 하는 인사방식이나 칭호에 있어서 일정한 형식과 규격이 있어 격식을 갖추어 서술하기가 꽤 까다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격식이 많이 생략되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4) 선물로 하는 인사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인사치레’를 한다고 한다. 선물은 흔히 물품이기는 하지만, 현금이 될 수도 있으며 근래에는 수표·상품권 등도 선물이 되고 있다.
희귀한 물품이나 값진 선물일수록 받는 사람의 기쁨이 크겠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인사는 본래 그 대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선물로써 인사치레를 하는 것은 물품을 주고받는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그 변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① 이사: 새로이 이사온 사람은 팥죽을 쑤어 한 그릇씩 이웃집에 돌리며 인사를 하기도 한다. 또한 새집에 이사왔을 경우, 친지나 동료들을 초대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특별히 ‘집들이’라고 한다. 이 경우 손님으로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답례로 초·성냥·비누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② 낙성: 집을 새로이 지어 낙성하게 되면 떡을 이웃에 나누어주기도 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③ 잔치: 백일잔치·돌잔치·생일·환갑잔치·혼인잔치 등을 맞은 집에서는 떡·술·전·엿·강정 등 특별음식을 장만한다.
이런 여러 가지 음식을 고루 담아서 이웃집에 돌리고 친지나 동료들을 초대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때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물품이나 현금을 축하품으로서 선사한다.
④ 축하: 근래에 와서는 입학·졸업·취직·승진·시험합격·포상 등등의 사유로 자축연을 열었을 경우에 초대받은 사람은 축하품이나 축하금을 선사한다.
⑤ 병문안: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위문할 경우, 그 친지들은 청량음료·꿀·과일·어물 등을 선사하여 문병한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이 밖에도 꽃·화분·책·미술품 등을 선사하기도 한다.
⑥ 상고(喪故): 상을 당하였을 경우, 상주는 일가 친인척에게는 물론 친지·동료에게 부고(訃告)로 상을 당한 것을 알린다.
예전에는 상고를 당하여 친지·동료에게 부고를 보내지 않으면 우정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절교하는 수도 있었다. 한편, 상고를 당한 집의 이웃에서는 죽·묵·두부·술·콩나물 등을 보내어 문상객을 접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문상객들은 백지·초·현금 등을 부의(賻儀)라 하여 상가(喪家)에 전하였으며, 특히 학식있는 문상객은 부의 이외에 만장(輓章)을 보내기도 하였다.
만장은 고인을 그리는 내용의 한시나 한문장(漢文章)을 붉은 천에 쓴 것으로서 출상행렬(出喪行列)의 앞에 들고 가는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위문의 편지, 즉 위장지(慰章紙)를 인편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잘 행하여지지 않으며, 극히 간소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우편제도가 널리 이용된 이후로는 멀리 있는 사람은 직접 방문하여 문상하지 않고 위로의 전문이나 서신을 보내기도 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무렵에 서울에서부터 상가에 조화환(弔花環)을 보내는 풍습이 생기더니, 어느 틈에 이 풍습이 새로운 조문예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⑦ 제사: 가제(家祭)는 조상에 대한 정기적인 인사이고, 제례(祭禮)는 신에 대한 인사라고 할 수 있다. 가제나 제례는 모두 제수(祭需)를 올리고 축문(祝文) 또는 제문(祭文)을 낭송하고 두 번 절을 한다. 제를 올리고 난 뒤의 음식은 ‘음복(飮福)’이라 하여 일가 친척이 그 자리에서 함께 나누어 먹는다.
1920년대 이후 서구문물의 유입이 늘어감에 따라 우리 사회에는 전에 없었던 여러 집회·회합·행사 등이 많이 개최되고 그 횟수도 많아지게 되었다. 전람회·전시회·음악회·독주회·미술작품 전시회·출판기념회·경진대회·공관개관식·피로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집회 또는 행사에서 주최자는 참석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 참석자 중에서는 주최자의 노고·공적 등을 찬양하고 치사하며 격려하는 말로서 축사를 하기도 한다.
참석자는 화환·화분 등을 선사하고 축가나 축시로써 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주최자가 참석자들에게 이른바 칵테일파티나 회식자리를 마련하여 인사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개화기 이후,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인사법은 서구문물의 유입과 더불어 새로운 양식으로 변질,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까다로운 격식이나 치레는 많이 생략, 간소화되는 한편, 종래에는 없었던 새로운 인사양식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시대의 변천에 따른 인사의 변화양상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9세기 말부터 우리 나라에는 개화(開化)라는 사회적 변혁이 일어나서 남자는 단발을 하고 모자를 쓰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
모자를 쓰게 된 후에는 입례나 반절이나 읍, 그리고 큰절을 할 때에는 반드시 모자를 벗고 절을 하게 되었고, 모자를 벗지 않고 쓴 채로 절을 하는 것은 큰 실례가 되었다.
한편, 외투 등 겉옷을 입거나 걸쳤을 때에도 실내에서 절을 할 경우에는 겉옷을 벗고서 절하는 것이 바른 예절이 되고, 겉옷을 걸친 채 절하는 것은 실례로 여겨졌다.
예전에는 갓과 두루마기나 도포를 입지 않고 절하는 것은 무례한 짓으로 간주되어, 절을 할 때에는 반드시 의관정제하는 것이 바른 풍습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모자를 벗고 하는 절은 큰 변화이다.
예전에 서당에 다니는 학동(學童)들은 아침에 서당에 가서 개별적으로 선생에게 큰절을 하여 인사를 올리고, 저녁에 돌아갈 때에는 개별적으로 입례로써 퇴거(退去)의 인사를 하였다. 그러던 것이 학교교육의 실시 이후 교과학습에 교시제(校時制)가 도입되면서 모습이 바뀌었다.
선생이 교실에 들어와 교단에 서면 학급장의 ‘차렷·경례·바로’라는 호령에 맞추어 모든 학생이 일제히 선생에게 입례 또는 반절을 한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이 나갈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서당에서 선생에게 하는 절은 하루 두 번이지만, 학교교육에서는 수업시간마다 인사를 한다. 이러한 인사방법은 일제강점기에 정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 시기부터 초·중등학교에서는 조회(朝會)라 하여 아침에 등교한 전학생을 운동장이나 강당에 모아놓고 전교사에게 전체 학생이 일제히 입례하는 인사양식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1935년부터는 남학생들에게 군사교육이 실시되면서 종전의 입례를 군인들처럼 거수경례로 바꾸었다. 이러한 행태는 오늘날에도 행하여지고 있다.
20세기 초의 기독교 선교 이후, 서구식으로 악수하는 인사법이 우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행하여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도시사람들을 중심으로 유행되었으나 광복 후에는 전국적으로 급격히 퍼져나갔다.
악수인사는 처음에는 남자들 사이에서만 행하여졌으나 지금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며 남녀간의 악수, 노소간의 악수도 자연스럽게 행하여지고 있다.
광복 이후 우리 사회는 서구와 적극적인 접촉을 시도하였고, 특히 6·25전쟁을 계기로 많은 외국병사와 서구인들이 들어오면서, 그들과의 접촉 속에서 많은 생활상의 변화를 일으켰다.
인사법의 경우, 그들 특유의 방식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헤어질 경우 한 손을 어깨 위로 들어올려 흔들면서 ‘바이 바이’ 하는 인사말은 성인남녀뿐 아니라 말 못하는 어린아이에게까지도 몸에 배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인사법은 정중한 예는 되지 못하며 매우 친근한 사이일 경우에만 주로 행하여진다.
박수를 침으로써 인사를 나타내는 풍습은 꽤 최근의 일이다. 이러한 인사법은 과거에는 우리 나라에 없었던 것으로 아마도 서구문물의 유입을 통하여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도입 초기인 일제강점기에만 하여도 박수를 치는 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광복 이후에 점차 일상화되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인사법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박수를 쳐서 인사하는 것은 가장 힘 안 들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인사법이기도 하지만, 환영·찬양·격려·치하·축하 등의 여러 가지 의미와 기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