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학궤범』에 의하면 조선 초기까지 「오운개서조인자(五雲開瑞朝引子)」·「회팔선인자(會八仙引子)」·「천년만세인자(千年萬歲引子)」·「중선회인자(衆仙會引子)」·「연대청인자(宴大淸引子)」·「전인자(前引子)」·「후인자(後引子)」 등의 악곡이 고려에서부터 전해온 당악정재와 조선 초기 창제된 당악정재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전인자」와 「후인자」를 제외한 모든 인자는 『고려사』 권71 악지의 당악정재 중에도 보인다. 이들 당악정재가 같은 책에 실린 43편의 산사(散詞)와 함께 고려 문종 이후 송나라에서 도입된, 송나라의 교방악과 관련된 음악으로 추정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사』 악지의 인자곡들도 역시 그 연원을 송나라의 교방악에 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고려사』와 『악학궤범』에 보이는 인자곡들은 조선 중기 이후 「보허자」와 「낙양춘」을 제외한 모든 당악곡의 소멸과 함께 연주 전통이 단절되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당악정재에서는 「보허자령(步虛子令)」·「여민락령(與民樂令)」·「향당교주(鄕唐交奏)」와 같은 곡이 인자곡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초기 인자곡의 음악적 형태는 유일하게 악보가 전하는 전인자와 후인자의 예에 비추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전인자와 후인자는 당악정재인 「연화대(蓮花臺)」와 향악정재인 「봉래의(鳳來儀)」에서 사용되었는데, 가사가 없는 관현(管絃)만의 연주로, 1행 32정간의 악보로 보아 모두 12행의 길이를 갖는다.
음계는 황·태·협·중·임·남·무의 7음 음계를 사용해 황종으로 시작해서 황종으로 끝난다. 1행마다 박(拍)이 한 번 들어가는데, 4행이 모여 장구장단 한 주기를 이룬다. 장구형은 「정대업」 중 독경, 「보태평」 중 계우, 「발상」 중 순우 이하 9곡, 「여민락」의 장구형과 순서가 같은데, 다만 「여민락」 등의 장구형을 반으로 압축한 점에서만 다르다.
즉, 「여민락」 등의 장구형은 1행이 기본적으로 8·8·8·8정간으로 나누어지는 데 반해, 「전인자」·「후인자」의 장구형은 기본적으로 5·3·5·3정간으로 나누어진다. 결국, 「전인자」·「후인자」는 「여민락」과 같은 고취계 음악의 음악적 특징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