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134∼154. 성은 박씨.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유리이사금, 일지갈문왕, 노례이사금의 형, 지마이사금이라는 네 가지 설이 있지만 모두 타당성이 없다.
다만 148년(일성이사금 15)에 박아도(朴阿道)를 갈문왕으로 봉한 사실로 미루어 아도갈문왕이 유리이사금의 아들이며 일성이사금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어머니는 이간생부인(伊刊生夫人)이다. 비(妃)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 혹은 지마이사금의 딸이라고도 한다.
138년금성(金城)에 국가중대사를 회의하는 장소인 정사당(政事堂)을 설치하였으며, 여러 차례 말갈의 침입을 받고 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기도 하였다.
144년에는 모든 주군(州郡)이 제방(堤防)을 수축하고 전야(田野)를 넓게 개간하도록 명하였으며, 민간에서는 금은주옥(金銀珠玉)의 사용을 금하였다. 146년 압독(押督: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이 모반하자 군사를 보내어 평정하였다. 148년에는 박아도를 봉하여 갈문왕을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