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흥(長興). 신종 때 수태부문하시랑평장사((守太傅門下侍郎平章事)를 지낸 임유(任濡, 任克仁)의 아들이며, 고종 때 각각 동지추밀원사·추밀원부사·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에 오른 임경겸(任景謙)·임효순(任孝順)·임경순(任景恂)의 형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으며, 이유(李儒)·이백순(李百順)·하천단(河千旦)·이함(李咸)·최자(崔滋) 등과 더불어 문명을 떨쳤다. 1227년(고종 14) 수찬관으로서 『명종실록』을 편찬하는 데 참여하였고, 줄곧 지제고(知制誥)를 지냈다.
1238년 형부상서, 1240년 추밀원부사를 지냈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수국사(修國史)·판예부사(判禮部事)·태자태보(太子太保)에 제수되었고, 이후 평장사에 올랐다.
그 동안 동지공거(同知貢擧)를 한 차례, 지공거를 세 차례 역임하였으며, 유경(柳璥)·장천기(張天驥)·김응문(金應文)·위순(魏珣)·민황(閔湟)이 임경숙의 문생이다. 벼슬이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으며, 1251년 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