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학장구주해」, 「중용보해」, 「율려산법」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당시 노론의 선배인 서충보(徐忠輔)·권희(權曦)·이정리(李正履) 등과 친교가 두터웠는데, 소론인 김계영(金啓泳)과의 회니시비론(懷尼是非論)이 발단이 되어 향당의 소론에게 거슬림을 받아 1836년(헌종 2) 옥사가 일어나 옥고를 치르고 이듬 해 김제로 정배되었다.
당시 김제군수 조병헌(趙秉憲)과 조병덕(趙秉悳) 형제의 대우를 받아 후진 교육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7년 만에 적소에서 풀려나자 조병헌의 주선으로 은진에서 살았다. 그 뒤 남포(藍浦)로 옮겼다가 다시 상주로 이사하여 43세에 죽었다.
경전과 성리설에 조예가 깊었으며, 역학(易學)·율려(律呂)·산수(算數)·예학에도 밝았다. 또한, 문장이 뛰어나고 시에도 능하였다. 임규직의 학설은 이항로의 심주리설(心主理說)을 계승, 발전시켰다.
저술로는 「대학장구주해(大學章句註解)」·「중용보해(中庸補解)」·「율려산법(律呂算法)」·「구두해법(句讀解法)」·「초종홀기(初終笏記)」 등을 남겼으며, 저서로는 『금천집(錦川集)』 18책이 있다.
참고문헌
- 『금천집(錦川集)』
- 『중암집(重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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