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직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학장구주해」, 「중용보해」, 「율려산법」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금천(錦川)
  • 용숙(容叔)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사망 연도1853년(철종 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11년(순조 11)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기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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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학장구주해」, 「중용보해」, 「율려산법」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용숙(容叔), 호는 금천(錦川). 서울 출신. 교리 임천상(任天常)의 손자로, 증이조참판 임백응(任百應)의 아들이다. 김주교(金周敎)·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준(李埈)·이인구(李寅龜)·이용헌(李用獻) 등과 교우를 맺고 도의를 강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북인세가(北人世家)로서 노론을 지지하였으며,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을 적극 숭배하여 회우당(晦尤堂)을 짓기도 하였다.

당시 노론의 선배인 서충보(徐忠輔)·권희(權曦)·이정리(李正履) 등과 친교가 두터웠는데, 소론인 김계영(金啓泳)과의 회니시비론(懷尼是非論)이 발단이 되어 향당의 소론에게 거슬림을 받아 1836년(헌종 2) 옥사가 일어나 옥고를 치르고 이듬 해 김제로 정배되었다.

당시 김제군수 조병헌(趙秉憲)과 조병덕(趙秉悳) 형제의 대우를 받아 후진 교육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7년 만에 적소에서 풀려나자 조병헌의 주선으로 은진에서 살았다. 그 뒤 남포(藍浦)로 옮겼다가 다시 상주로 이사하여 43세에 죽었다.

경전과 성리설에 조예가 깊었으며, 역학(易學)·율려(律呂)·산수(算數)·예학에도 밝았다. 또한, 문장이 뛰어나고 시에도 능하였다. 임규직의 학설은 이항로의 심주리설(心主理說)을 계승, 발전시켰다.

저술로는 「대학장구주해(大學章句註解)」·「중용보해(中庸補解)」·「율려산법(律呂算法)」·「구두해법(句讀解法)」·「초종홀기(初終笏記)」 등을 남겼으며, 저서로는 『금천집(錦川集)』 18책이 있다.

참고문헌

  • - 『금천집(錦川集)』

  • - 『중암집(重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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