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승지,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1년(숙종 2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장령·승지·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연잉군(延礽君)의 세자 책봉에 앞장섰다. 그 뒤 신임사화로 함종에 유배되었다가 금천(金川)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죽었다. 영조 즉위 후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가 풀림)되었다.
만년에는 『주역』·『논어』를 직접 손으로 베껴 써가면서 그 뜻을 깊이 연구하였고, 시에 있어서는 특히 당시(唐詩)를 좋아하여『가행육선(歌行六選)』·『당절회최(唐絶薈蕞)』·『당률집선(唐律輯選)』·『당아(唐雅)』 등의 시가집을 엮었으며, 이밖에도『논어취분(論語聚分)』·『사가할영(史家割榮)』·『선문(選文)』·『철영시(掇英詩)』·『수촌집』 등의 저서를 남겼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수촌집(水村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