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길보(吉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천(豊川, 지금의 황해도 송화)
  • 사망 연도1744년(영조 2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형조참판
  • 출생 연도1671년(현종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문기 (경산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임수적 편지 미디어 정보

임수적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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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길보(吉甫). 임숙영(任叔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양(任量)이고, 아버지는 참판 임윤원(任胤元)이며, 어머니는 권완(權俒)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6년(숙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문음(門蔭)으로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이 되었다. 1725년(영조 1) 삼가현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문한관(文翰官: 문필에 관한 직무를 맡은 관직)이 되었고, 1727년(영조 3) 조현명(趙顯命) 등 20인과 함께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올랐다.

그 뒤 부수찬·수찬·헌납·부교리·사간·응교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하고, 1734년(영조 영조 10) 대사간이 되어 훈련도감 및 전라도지방의 바르지 못한 정책을 바로잡을 것을 상소하기도 하였다.

같은해 승지에 임명되어 그 뒤 8년간이나 계속 이 직에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대사간·형조참판을 잠시 역임하기도 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고금의 필법의 장점을 취하여 독특한 서체를 구사하여 당대에 명필로 이름났다고 한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재간집(在澗集)』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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