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동해창의대장에 추대되었으며, 산남의진 조직에 참여하며 좌포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정용기(鄭鏞基)를 중심으로 의병진을 결성하기 위하여 각 지방별로 계획을 추진하는 담당자를 선정할 때, 서종락(徐鍾洛) 등과 청송지역을 맡아 산남의진 성립에 기여하였다.
그 해 4월 산남의진은 청하읍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정용기가 투옥되고 전력이 약화되어 7월경 해산되었으나, 이듬해 4월 다시 의진이 창군되자 동해지구 유격장에 임명되어 청송·영천 등지에서 항쟁하였다. 그 해 7월 산남의진이 동해방면으로 진출할 때 본진에 합류, 좌포장이 되었다.
9월 영일군 죽장면전투에서 정용기가 전사하자 그의 아버지 정환직(鄭煥直)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200여 신병을 이끌고 청도 운문산(雲門山)에 들어가 훈련시켰으며, 1908년 봄에는 운문산을 근거지로 경주·언양·양산·밀양·영산·창녕 등지의 적을 격파하였다.
그 해 6월 일본군에 붙잡혀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10개월 만에 석방되어 1910년 4월에 옛 동지들을 다시 규합하여 보현산에서 산남의진을 재결성, 대장이 되어 청송·의성 등지에서 적과 교전하다가 다시 붙잡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유공자공훈록』1(국가보훈처, 1986)
- 『대한독립운동약사』(윤보현, 대한독립운동약사간행위원회, 1980)
- 『산남의진유사』(산남의진유사간행위원회, 1972)
- 『독립운동사』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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