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익(景翼 또는 慶翼), 호는 남곡(南谷). 임열(任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영로(任榮老)이고, 아버지는 정랑 임장(任章)이며, 어머니는 황정신(黃廷愼)의 딸이다.
1642년(인조 20)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이듬해 지평·정언 등을 지내고, 1644년 사서로서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심양에 볼모로 갈 때 최명길(崔鳴吉)·김상헌(金尙憲) 등과 함께 배종하였다. 이듬해 돌아와 지제교가 되고 지평에 재임하다가 수찬이 되었다.
1659년(현종 즉위년) 교리로서 춘추관기사관을 겸임하여 『효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이어 헌납·영남좌도감시관을 역임하였다.
1663년 길주목사로 임명되어 부임하였으나 외직에 나갔음에 불만을 품고 병을 핑계삼아 행정에 소홀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음주로 나날을 보내다가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가자(加資: 공이나 능력을 인정받아 품계나 자품을 더해 줌.)가 환수되었다. 시문에 뛰어난 재능을 지녀 팔대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