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고승진영.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147.5㎝, 가로 96.5㎝. 1990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영정은 통도사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세운 자장율사가 중국으로부터 가져온 대장경이 봉안되었다 하여 이름 지어진 해장보각(海藏寶閣)에 고려대장경과 함께 모셔져 있다. 그리고 1804년(순조 4년)풍오(豊悟)를 증명법사(證明法師)로 하여 양공(良工) 계한(戒閑), 화원(畫員) 성인(性仁) · 상엽(尙曄) · 계근(戒僅) · 최희(最羲) 등이 그렸다.
자장의 성은 김씨, 속명은 선종랑(善宗郞)으로 신라 제일의 귀족인 진골 출신이며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무림(茂林)의 아들이다. 『속고승전(續高僧傳)』에는 자장율사를 신라의 왕자라고 해 가계가 왕실과 친밀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누이의 아들인 명랑(明郞) 등의 3형제가 모두 출가해 승려가 된 사실로 미루어 불교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진영은 붉은색 등받이를 한 검은 갈색 의자 위에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으로 가부좌(跏趺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어깨가 떡 벌어진 당당한 체격과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에 단정한 이목구비를 갖추어 우리 나라 남산율종(南山律宗) 개조(開祖)로서의 기품과 함께 자애로움이 넘치는 듯하다. 특히 피부색을 흰색에 가까울 정도로 맑고 투명하게 처리하여 진골(眞骨) 출신다운 귀족풍의 피부와 체온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이 그림에서 돋보이는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녹색 장삼에 붉은색 가사를 두르고 있는 자장의 지물(持物)은 불자(拂子 : 번뇌 · 장애를 물리치는 데 쓰이는 불구의 하나)뿐이다. 왼손으로는 대나무 모양의 자루 끝 부분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불자의 술 하단부를 살포시 쥐고 있다.
벽면과 바닥으로 구분 지어 자칫 이분(二分)되기 쉬운 화면의 분리를 막고 안정감을 부여하고자 직선적인 의자를 중앙에 큼직하게 배치하였다. 그래서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든다. 반면에 하단부에는 아름답게 장식된 가죽 신발이 가지런하게 놓인 자그마하고 꾸밈새 있는 신발대를 그려 놓음으로써 경직성을 해소해 주는 구성상의 재치가 엿보인다.
색채는 녹색과 적색을 주조색(主調色)으로 삼고 백색(白色)과 황토색(黃土色)을 가미하여, 그림이 안정되면서도 경쾌한 맛을 더해 준다. 화면 우측 상단에는 ‘帝師新羅國師慈藏律師之眞(제사신라국사자장율사지진)’이라는 법호(法號)가 또렷하게 남아 있다. 하단 중앙부에는 조성 연대 · 봉안처 · 증명법사 · 양공 · 화원 등에 관한 화기(畫記)가 쓰여져 있다. 도상(圖像)의 주인공과 그림을 조성한 연대, 화원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