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서(都校署)의 후신이다. 고려의 관제정비기인 문종 때 세워진 도교서에는 목업(木業)·석업(石業)·조각장(彫刻匠)·석장(石匠)·장복장(粧覆匠)·이장(泥匠) 등의 전문기술인이 소속되어 있어 이미 목종 때 설치된 장작감(將作監)과 함께 당시 토목공사를 주관하였다.
그러나 1308년(충선왕 즉위년)에 충선왕은 도교서를 혁파하여 잡작국으로 고치고, 직제로는 사(使, 종5품)·부사(副使, 종6품)·직장(直長, 종7품)을 두었다.
휘하의 이속(吏屬)은 문종 때부터 있어왔는데 감작(監作, 4명)·서령사(書令史, 4명)·기관(記官, 2명)이 있어 실무를 담당하였다.
그 뒤 1310년에 다시 도교서로 환원되었으나 결국 1391년(공양왕 3) 기능이 유사한 선공시(繕工寺 : 장작감의 개칭)에 병합되었는데, 이는 조선건국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개편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