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주심포계의 맞배지붕건물. 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장륙사는 1355년(고려 공민왕 4) 창수면 출신의 나옹(懶翁)이 창건하였는데, 조선 세종 때 산불로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건물이 전소되었으나 곧 중창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채 명맥만 이어오던 것을 1900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높은 기단을 자연석 허튼층으로 쌓고 정면에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막돌 덤벙주초 위로 두리기둥을 세우고, 공포(栱包)는 외목을 둔 주삼포(柱三包)집으로 출목간에는 순각판(巡閣板)을 설치하였다.
처마의 서까래와 부연(浮椽), 7량가의 가구 짜임과 보아지, 천장의 법식 등은 임진왜란 이전의 옛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반해, 공포의 구성양식은 조선 중기 이후로 시대가 떨어지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단청은 매우 장엄하고 화려하다.
어칸 고주간에 불단을 만들어 중앙에 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좌우 보처(補處)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는데, 향우(向右)의 관세음보살상은 지불(紙佛)로 알려져 있다. 그 위로 빈틈없이 무늬를 베풀어 장식한 운궁[雲宮 : 초새김한 포살미가 중첩된 부분]으로 장엄하였고, 천장은 소란반자로 무늬나 색조가 아름답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전각은 가구수법이 고격(古格)이며, 공포수법은 또 다른 시대감을 느끼게 해주며, 뛰어난 단청기법과 벽화는 중요한 국가유산의 가치를 점하고 있는 수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