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남문 창의비

  • 예술·체육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의사들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허균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3일
장성 오산 창의비와 창의사 중 창의비각 전경 미디어 정보

장성 오산 창의비와 창의사 중 창의비각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의사들의 충의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내용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비각은 임진왜란 때 장성 남문(현재 북일면 오산리)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순국한 의사(義士)들의 충의정신(忠義精神)을 기리기 위하여 1802년(순조 2)에 호남의 유림(儒林)들이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판서(判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가 지었으며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높이 168cm, 폭 63cm 크기의 규모로 되어 있다. 오산 남문창의(南門倡義)는 1592년 7월 20일에 김경수(金景壽) · 기효간(奇孝諫) · 윤진(尹軫) 등이 격문(檄文)을 각 고을에 보내어 의병을 모아 11월에는 초단(草壇)을 설치, 김경수(金景壽)를 맹주(盟主)로 추대하고 김제민(金齊閔)을 의병장으로 삼았다.

그 후 의병군은 북으로 진군하여 직산(稷山) · 진성(振城) · 용인(龍仁) 등지에서 왜적을 격파하고 많은 왜병을 사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이 비에 새겨진 77선열(先烈) 가운데는 승려가 9명, 노복(奴僕) 1명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 『장성군문화재일람(長城郡文化財一覽)』(한국문화재보호협회장성군지부, 197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