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화순 출신. 이명은 윤초(允初)·인상(仁尙)·인보(仁甫)·인복(仁福). 원래는 목수였으나 국가의 위급한 상황을 구하고자 의병에 투신하였다.
1909년 2월경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의 선봉장이 되어 약 두달 동안 동료의병 80∼90명과 함께 보성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 기간 중에 안규홍의 지시를 받아 염인서(廉仁瑞)·염군명(廉君明)·임하중(林夏中) 등과 함께 양민의 재물을 탈취한 부호를 처단하였으며, 민가에 은닉된 총기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1909년 음력 5월말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의 선봉장으로 옮겨가 동료의병 100여명과 함께 장흥·강진·보성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기간인 9월에 붙잡혀 이듬해 9월 폭동 및 강도 모살죄로 교수형을 당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