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삼척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20년 예조참의·승지를 지내고 이듬해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4개월만에 사직소를 올려 휴가를 허락받았으며, 이어 진위사(陳慰使)에 임명되었으나 부모의 나이가 70된 수령은 300리 밖의 지역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는 규례에 따라 관직을 교체해 줄 것을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이첨(李爾瞻)의 도움으로 청화직을 두루 역임했던 그는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유배되었으나 곧 사유(赦宥: 죄를 용서하여 줌)를 받았다. 이어 큰 고을을 두루 맡기도 하였으며, 1625년(인조 3)에는 성절사 겸 동지사에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사헌부에서 중국에 보낼 사신의 선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자 관직이 교체되었다. 1648년 삼척부사로 재직 중 암행어사 이정영(李正英)의 탄핵을 받아 흥해(興海)로 장배(杖配)되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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