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창화부인(昌花夫人)’이라고도 한다. 성은 김씨(金氏)로 소성왕의 딸이다. 흥덕왕이 즉위한 해인 826년 12월에 죽었다. 왕은 죽은 왕비를 잊지 못하여 오래도록 슬퍼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표(表)를 올려 다시 비(妃)를 맞이할 것을 청하자, 왕은 “홀로 된 새도 짝을 잃은 슬픔이 있는데 하물며 좋은 배필을 잃고서 어찌 차마 무정하게 곧 재취하겠느냐.”고 따르지 않고, 곁에는 시녀도 가까이하지 않고 환관만 있게 하였다.
장화부인은 정목왕후(定穆王后)로 추봉(追封)되었다. 능(陵)은 안강(安康) 북쪽 비화양(比火壤)에 있는데 왕과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