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장천암(長川庵)이 있었다고 하는데 장흥위씨(長興魏氏)들이 조선 전기(1450년경) 이곳에 장천재를 세워 오랫동안 한학의 서재로 이용되어왔다고 한다.
현 건물은 1870년경 중건한 건물로서 한때 위백규(魏伯珪)가 수학하였던 곳이다. 위백규는 이곳, 즉 장흥부 계춘동(지금의 관산읍 방촌리)에서 태어나 평생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으로만 일생을 마쳤으며, 천문 · 지리 · 율력 · 의학서 등에까지 통달하였다.
이 건물은 8계단의 석재로 높은 기단을 이루고 H자형 평면에 정면 양칸에는 누각형을 하고 난간을 둘렀다. 마루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중앙 3칸은 방을 배치하였다.
결구수법은 4칸에 주두(柱頭)와 첨차(檐遮)를 올려 지붕하중을 지탱하게 하고 지붕은 중간우동의 곡선이 양편날개의 지붕높이와 같게 하였는데 전면에서는 팔작형 합각을 이루고 있으나 배면에는 맞배지붕 형식을 취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