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적상산(해발 1,034) 정산부근 안국사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적상산에 사고가 설치된 것은 1614년(광해군 6)이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에 보관 중이던 실록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전소되자, 선조가 태조대부터 명종대까지의 실록 3부를 더 인쇄해 전주본 원본과 교정 인쇄본을 합쳐 실록 5부를 만들어 춘추관(春秋館) · 마니산(摩尼山) · 태백산(太白山) · 묘향산(妙香山) · 오대산(五臺山)에 각각 1부씩 분치(分置)하였다.
그 뒤 1614년 적상산에 실록각(實錄閣)을 건립하고 1618년에 묘향산사고의 실록 일부를 옮겨 보관했으며, 1633년(인조 11) 나머지 실록을 모두 적상산사고로 옮겼다. 1641년(인조 19) 이곳에 선원각(璿源閣)을 건립하고 《선원록 璿源錄》을 봉안함으로써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실록 824책, 선원록 1,446책, 의궤(儀軌) 260책, 잡서 2,984책으로 총 5,515책이 보관되었다 한다. 이 서책들은 1910년 이후 일제에 의해 장서각(藏書閣)으로 옮겨졌다가 6·25당시 부산 동래로 대피시켰는데, 그 뒤 실록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적상산사고의 건물은 사고 12칸, 선원각 6칸, 수사당 6칸, 승장청(僧將廳) 6칸, 군기고(軍器庫) 7칸, 화약고 1칸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단지 선원각만 현재 안국사의 천불전(千佛殿)으로 개수되어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사고지 유구는 1992년 무주 양수발전소 상부댐 건설로 수몰되어 그 위 기슭으로 이전 복원되었으며, 1995년 6월 20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