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망일당(望日堂), 설월당(雪月堂)
  • 자수(子綬)
인물/전통 인물
  • 본관옥천(沃川)
  • 사망 연도1659년(효종 10)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부사
  • 출생 연도1598년(선조 3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계찬 (전 동아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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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자수(子綬), 호는 망일당(望日堂) · 설월당(雪月堂). 상장군(上將軍) 전희철(全希哲)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자감직장 전개(全漑)이고, 아버지는 봉사(奉事) 전뇌(全磊)이며, 어머니는 진양 정씨(晉陽鄭氏)로 군수 정호인(鄭好仁)의 딸이자 대제학 정척(鄭陟)의 현손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나면서부터 자품이 장중하고 정신이 명수(明粹)하였으며 총명 재기가 특출하였다.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중앙관직으로 정자(正字)를 거쳐, 박사 · 전적, 형조 · 예조 좌랑, 형조정랑, 전라도사, 성균관직강, 예조정랑, 강진현감 병조좌랑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등을 지냈다.

사간원 정언으로 있을 때 권신 김자점(金自點)의 죄를 탄핵하다가 북변의 외직으로 쫓겨났다. 외직으로는 함경도사 봉산현감 · 고산찰방 · 봉산군수 · 충청도사 · 장흥부사 · 선산부사 등을 지냈다.

그는 지방에 부임한 곳마다 공덕비가 세워졌는데, 특히 선산부사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청덕비(淸德碑)가 세워졌다. 서예에도 뛰어났다. 그의 저서로 『설월당문집』과 유고(遺稿)가 전한다. 경북 영주의 방산서원(方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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