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연 ()

전호연
전호연
체육
인물
해방 이후 극동프로모션을 설립하여 프로모터로 활동한 체육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9년
사망 연도
1994년
출생지
황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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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극동프로모션을 설립하여 프로모터로 활동한 체육인.
개설

황해도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나자와(金澤)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 누이가 있어 본적지를 강경으로 바꾸었다. 본업이 건설업이었으나 당시 동양타이틀을 최초로 획득한 강세철(康世哲) 선수와 알게 된 것이 연유가 되어 건설업자가 변신하여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매치메이커 또는 프로모터로서 대활약을 하였다.

복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59년이다. 한국 최초의 동양극장의 사장 아들이며 공과대학출신인 그는 재력과 학력을 겸비한 인물인 동시에 영어와 일본어가 능숙하여 국제적인 프로모터로서 활약하게 되었다. 1968년에 극동프로모션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프로모터로 맹활약을 하게 되었다.

특히, 1976년 10월 인천에서 개최된 홍수환(洪秀煥) 대 사모라의 세계권투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을 개최하여 능력있는 프로모터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1978년부터 그는 크게 약진하기 시작하였는데 김성준(金性俊)·김상현(金相賢) 선수를 세계챔피언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주로 멕시코·파나마·유럽·인도네시아 등 프로복싱을 하는 나라는 어디든지 방문하여 그의 비즈니스 활동을 강화시켜 나갔다.

영어·일어·스페인어 등을 잘 구사하여 미국의 봅 애럼, 돈 킹, 남미의 슬레이만(WBC 회장), 맨도자(WBA 회장), 산체스, 마차도 등 굴지의 프로모터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 여러 차례의 세계타이틀전을 성사시켰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김성준·김상현·김철호·김환진·장정구·이열우·백인철 등의 WBA·WBC 참피언과 전주도·권순천·이승훈·신희섭·문태진 등의 IBF 챔피언을 탄생시키는 쾌거를 이룩하여 한국 프로복싱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의혹도 있었다. 1982년에는 태국의 가짜 복서사건으로 프로모터 자격증을 한 차례 반납하였고, 1984년 9월 13일의 권순천의 제3차 방어상대자 카스트로사건은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단(양정규 회장, 황종수·이익순 부회장)의 사퇴와 그의 전격 구속이라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가짜선수사건 이후 자숙의 의미로 복싱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다가 1986년에 극동프로모션을 월드프로모션(전연호의 사위인 김종수가 사장을 맡음)으로 개명함과 동시에 회장으로 다시 등장하였다. 그는 다시는 이러한 실수가 없도록 국제기획실을 마련하여 세계각국의 선수들의 신상파악은 물론 각 선수의 장단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그의 부활은 월드체육관 소속 선수들, 장정구의 15차방어 승리와 신희섭·이승훈·백인철의 세계 도전 등의 쾌거를 이룩하게 하였다. 그가 사망한 뒤 극동프로모션은 막내사위인 이승훈이 운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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