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당시 전후고취는 악사 1인과 악공 18인으로 구성되었다. 전후고취의 연주는 왕의 정전으로의 출궁(出宮)과 정전에서의 환궁(還宮) 때 연주되었는데, 사알(司謁)이 음악을 연주하라고 전하면 전후고취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왕이 정전으로 들어가면 전후고취가 그치고 헌가악(軒架樂)이 이어서 시작된다.
환궁할 때에는 왕이 정전의 후문을 나오려 할 때 헌가가 연주를 그치고 이어서 전후고취의 연주가 시작되었고, 왕이 안으로 들어가면 박을 급히 치고 연주를 그쳤다. 성종 당시의 전후고취는 『악학궤범』에 (그림)과 같이 진열되었다.
인조 이후의 전후고취는『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집박가전악(執拍假典樂) 1인과 악공 18인으로 구성되었는데, 악기 편성은 방향·교방고·당적·퉁소 각 1인과 장구·비파·해금·피리·대금 각 2인과 악기를 메는 담지(擔持) 4인으로 편성되었다. 성종 때의 것에 비하여 조선 후기의 전후고취에는 교방고와 해금이 추가된 점이 특징적이며, 악공의 수는 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