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 ()

목차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신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692년(효소왕 1)
출생지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신으로 당나라에 파견된 관리.
내용

당시 신라의 승려 혜통(惠通, 왕화상)이 당나라에 유학하던 중 당나라 고종(高宗)의 공주를 병들게 한 독룡(毒龍)을 쫓아내자, 이에 혜통에게 앙심을 품은 독룡은 신라에 건너와서 크게 행패를 부렸다.

이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공은 혜통에게 독룡의 피해가 심함을 알리어 귀국하여 해를 막아줄 것을 청하고, 혜통과 더불어 665년(문무왕 5)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혜통이 독룡을 문잉림(文仍林)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공이 독룡의 원한을 사게 되어, 독룡이 정공의 집 앞에서 버드나무가 되어 보복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줄 모르는 정공은 버드나무를 매우 사랑하였는데, 692년 7월에 마침 신문왕이 죽자 장지에 이르는 길을 만들기 위하여 집앞의 버드나무를 유사(有司)에서 베려고 하였다.

그러나 독룡이 씌어서 “내 목을 벨 수는 있을지언정 이 나무는 베지 못한다.”고 왕명에 항거하다가 죄를 입어 죽임을 당하고, 집은 흙으로 파묻히게 되었으며, 처와 가속들도 죄를 받았다. 뒤에 효소왕이 혜통으로부터 그 항명이 본심이 아니라 독룡의 소행임을 듣고 알게 되어, 그 처와 가속들은 면죄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혜통항룡조」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