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시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고부군수, 호조참의, 돈녕부도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담(桂潭), 계헌(桂軒)
  • 이건(以建)
인물/전통 인물
  • 본관동래(東萊)
  • 사망 연도1595년(선조 2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참의|돈녕부정
  • 출생 연도1522년(중종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오룡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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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고부군수, 호조참의, 돈녕부도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이건(以健), 호는 계담(桂潭)·계헌(桂軒). 현감 정광린(鄭光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장(部將) 정희경(鄭姬卿)이고, 아버지는 천문교관(天文敎官) 정화(鄭華)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동생 정복원(鄭復元)과 함께 송도에서 서경덕(徐敬德)에게 수업하였다. 1546년(명종 1) 사마시를 거쳐 155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되었다.

내외의 여러 관직을 거쳐 1567년 고부군수가 되었으며, 이 때 간신들이 국론을 분열시켜 국정을 어지럽히고 많은 충신과 현사(賢士)가 죽음을 당하게 됨에 통탄하여 그 신원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왕은 이 장계사건에 대하여 연소문관이 공론을 빙자하여 반대당의 신원을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여 처벌하고자 하였으나, 윤원형(尹元衡)의 변명으로 화를 면하였다.

그 뒤 무고함이 밝혀져 선조 초 지평에 임명되었으며, 계속하여 호조참의·돈녕부도정을 역임하다가 1592년(선조 25) 은퇴하였다. 시문에 밝았으며, 유영경(柳永慶)과 교유하면서 시문으로 자연과 인정을 노래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저서로 『계담집』이 있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송자대전(宋子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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