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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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 전경
부안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 전경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에 있는 조선후기 정유재란 당시 의병장 채홍국과 의병들이 전사한 전적지.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정유재란호벌치전적지(丁酉再亂胡伐峙戰蹟地)
지정기관
전북특별자치도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시도기념물(1976년 04월 02일 지정)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96-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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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에 있는 조선후기 정유재란 당시 의병장 채홍국과 의병들이 전사한 전적지.
내용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채홍국은 흥덕에서 동지 92명을 규합하여 왜적과 싸웠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1597년 1월 27일 채홍국 · 김영년(金永年) 등은 다시 동지 33인을 더 규합하여 126명의 의병이 정유갱창동맹(丁酉更倡同盟)을 결성하고 호벌치 고개에서 왜병을 맞아 싸우게 되었다.

당시의 순절기에 의하면 3월 23일부터 4월 19일까지 이 일대에서 왜적과 전투를 벌였으며, 이 때에 채홍국과 그의 아들 채명달(蔡命達) · 채경달(蔡慶達) 3부자를 비롯하여, 채홍조(蔡弘祖) · 이탁(李卓) · 승(僧) 만세(萬世), 김영(金榮) · 채우령(蔡禹齡) · 이시화(李始華) · 이익성(李益盛) · 임추(林樞) · 오몽서(吳夢瑞) · 김귀복(金貴福) 등이 이곳 호벌치싸움에서 전사하였다고 한다.

정유재란 호벌치전적비(胡伐峙戰蹟碑)는 유정자(柳亭子)재에 위치했는데 1964년 도로확장공사에 따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때 새롭게 순절비(殉節碑)를 세우고 주변을 정화하고 석등(石燈)과 호상(虎像) 한 쌍을 세워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참고문헌

『전국문화유적총람』(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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