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窻居士). 아버지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정탁(鄭琢)이며, 어머니는 거제반씨(巨濟潘氏)로 반충(潘冲)의 딸이다. 일찍이 가정에서 교육을 받다가 정구(鄭逑)·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세 전에 경사자집(經史子集)의 많은 서책을 읽었고, 시문에 뛰어나 일가의 체격을 이루었다. 필법이 신묘(神妙)하여 일찍이 이국창(李菊窓)의 당벽(堂壁)에 시 두 구절을 초서로 써붙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그 곳에 진(陣)을 치다가 글씨를 보고 경탄하며 뜰에 내려가 절하고 떠났다고 한다. 1589년(선조 22)에는 사은사(謝恩使)로 가는 사행(使行)길을 따라 중국에 다녀왔다.
벼슬에 뜻이 없어 두 차례 재랑(齋郎)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1616년(광해군 8)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에 취임하였으며, 1618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사직, 산수를 벗삼아 시와 서(書)로 세월을 보냈다.
만년에는 용궁(龍宮)의 장야평(長野坪)에 초려(草廬)를 짓고 마을의 자제들을 모아 가르쳤다. 1786년(정조 10)부터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청풍자문집(淸風子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