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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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욱
정인욱
경제
인물
해방 이후 강원산업 주식회사, 강원탄광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2년
사망 연도
1999년
본관
김포(金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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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강원산업 주식회사, 강원탄광주식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생애와 활동사항

본관은 김포(金浦). 아버지는 정찬유이고, 어머니는 김찬성이다. 무인 김여애와의 사이에 2남3녀를 두었다. 1935년 일본 와세다 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38년 일본 와세다대학교의 채광야금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한 뒤 1947년 상공부 석탄과장을 지냈고, 1950년 대한석탄공사 이사가 되었으며, 1956년에는 총재가 되었다.

그 뒤 개인 사업이자 그의 가업인 강원산업을 1952년 11월 20일 강원탄광(江原炭鑛)으로 창립하여 사장이 되었고, 1961년 최고회의 기획위원으로 있었으며, 이듬해에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71년 한국과학원 부이사장을 역임한 뒤 삼표제작소 사장이 되었으며, 1974년에는 한국과학원 이사장과 포항 연관(鉛管)단지 협의회 회장이 되었다.

1975년 삼표제작소의 회장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기계공업진흥회 부회장을 지냈다. 또한, 1981년부터 전경련 부회장과 고문 등으로 있었다. 다음해 그가 성장시켜온 강원산업주식회사의 회장이 되었으며, 그 뒤 1989년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명예회장으로 있었다.

강원산업의 연혁을 보면, 1966년 1월 강원산업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 뒤, 1976년 3월 5일 자본금 67억 원으로 상장하여 기업을 공개하고, 1977년 12월 방위산업체 제65호로 지정되었다. 1985년 4월 석유사업부문을 계열사인 삼표종합가스 주식회사에 이관하고, 1986년 7월 중기공장(重機工場)을 가동하였다.

그 뒤 1988년 2월 석탄사업부문을 분리하여 강원탄광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레미콘사업장을 삼표산업주식회사에 이관했으며, 또한 일본에 현지 법인인 강원상사주식회사를 세우기도 하였다.

1988년 12월에는 연탄사업부문을 분리하여 삼표연탄주식회사를 세우고, 1991년 11월 삼표중공업공장을 철강사업부와 중공업사업부로 분리 운영하였다.

강원산업주식회사는 종업원 2,400여 명, 자본금 529억 원, 연간 매출액 5008억 2704만 원, 내수 3898억 3736만 원, 수출 1109억 8968만 원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그 산업을 기반으로 하여 중공업·철강·연료 등의 분야에 13개 계열기업을 가진 강원산업이란 그룹으로 사업을 성장시켰다.

이렇게 그의 한국산업과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 및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고, 한국경영자상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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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유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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