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성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문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문암(文巖)
  • 성지(成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압해(押海)
  • 사망 연도1801년(순조 1)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18년(숙종 44)
  • 출생지영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혈조 (영남대학교, 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문암집 / 정지성 미디어 정보

문암집 / 정지성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문암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압해(押海), 자는 성지(成之), 호는 문암(文巖).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榮州) 줄포(茁浦)인데, 고조부 때부터 이 곳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진사 정태신(丁泰愼)이며, 어머니는 완산이씨(完山李氏) 이하장(李夏章)의 딸이다.

5세에 부친상을 당했으며 큰아버지에게서 수학하였는데, 특히 경전(經傳)을 탐독하고, 율력(律曆)·병기(兵機)·복서(卜筮)·주수학(籌數學)을 연구하기도 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26세에 향시에 참여해 수석에 오르기도 하고, 36세에는 성균관에 들어가 본격적인 과거시험 준비도 하였으나, 과장(科場)에 들어갔을 때 척족(戚族)되는 사람이 지공거(知貢擧)로서 정지성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과거를 포기하고 말았다.

정지성의 관직은 83세 때 노인의 대우로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라는 이름뿐인 직책을 받았으나, 초야에 묻힌 선비로서 18세기 당시 사회를 우국(憂國)의 시각으로 파악하면서 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문암집(文巖集)』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칠실공담(漆室空談)은 정지성의 개혁정신을 담은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정지성의 초기 실학적인 사상은 족손인 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져 실학(實學)이 집대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지성의 학문은 세간에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주(榮州) 사계서원(泗溪書院)을 중심으로 그 지역 선비들에게 읽혀지고 영향을 주었다. 저서로 『문암집(文巖集)』이 있다.

참고문헌

  • - 『문암집(文巖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