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간,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69년(선조 2) 의금부도사로 재직시 나이 45세에 이르러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이조좌랑·지평·부교리·헌납·집의·직제학 등을 지내면서 청론(淸論)을 벌였다는 칭송을 들었다.
그 뒤 대사성·대사간·대사헌을 거쳐 1581년 우의정에 올랐으니, 관직에 나온 지 15년 만에 정승자리에 오른 예는 흔히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1583년 신병이 깊어짐에 따라 거듭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청하였으나 선조가 허락하지 않았고, 그 역시 병중에서도 글로써 국사(國事)를 논의하다가 그 해 59세로 죽었다.
죽음에 이르러 왕이 대신할 인물을 천거하라고 하자 이산해(李山海)를 천거하였고, 또 유소(遺疏)로 이이(李珥)를 인재로 천거하였는데, 특히 이이의 장단점을 잘라 말한 다음, 그의 기질을 적절히 알아서 쓴다면 나라에 큰 이익이 될 것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계갑일록(癸甲日錄)』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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