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집의, 황해도관찰사, 광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73년 종성부사(鍾城府使)로 임명되었다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가자(加資)가 취소되기도 하였다. 그는 필선·헌납·집의, 삼척부사(三陟府使) 등을 지내다가 숙종이 즉위한 이후에도 주로 문한직이나 언관직에 있었으며 황해도관찰사·광주부윤 등 지방관도 역임하였다.
1682년(숙종 8)의 허새(許璽)의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정배되었다. 이 역모는 허새를 포함하여 민암(閔黯)·권대운(權大運)·오시복(吳始復)·오정위(吳挺緯), 정창도 등 16인이 회맹하여 수원·장단 등 경기 각지에서 동시에 거사하여 복평군(福平君)을 추대하고 대왕대비에게 수렴청정하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고변내용에서 정창도는 경기도 광주를 맡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뒤 그의 죄명이 문안과 다름이 있다하여 그의 사후인 1689년에 복작(復爵)되었다. 그리고 1693년에는 아경직(亞卿職: 육조의 참판, 좌·우윤 등을 공·정경 등에 상대하여 부르던 이류)을 추종하였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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