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수하는 품위는 대개 6품직으로서, 때로는 왕이 특별히 사정전(思政殿)에 초치하여 치국(治國)의 도리와 학문의 방도를 하문하기도 하며, 주찬(酒饌)을 하사하고 또한 병으로 고생하면 내의(內醫)를 파견, 진찰하게 하고 약물(藥物)을 보내는 등, 그 우대함이 삼공(三公)에 비할만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정초제도를 시행한 것은 1552년(명종 7)으로, 명종은 각 도의 관찰사에게 명하여 유일(遺逸)의 선비를 천거하도록 하였다. 그 때 상경한 선비는 성수침(成守琛)·조욱(趙昱)·성제원(成悌元)·조식(曺植)·이희안(李希顔) 등인데, 명종은 즉석에서 6품직을 주었다.
또, 명종 말년에 이조와 예조에서 대신들과 상의하여 경술(經術)에 고명하고 행실이 고고한 선비를 정초하였는데, 성운(成運)·한수(韓脩)·남언경(南彦經)·임훈(林薰)·김범(金範) 등 6인에게 6품직을 주었다. 선조 초기에는 전례를 들어 각 도의 관찰사에게 선비를 천거하게 하였는데, 경기도관찰사 윤현(尹鉉)이 성혼(成渾)을 천거하였다.
인조반정 후에는 김장생(金長生)이 정초되어 장령이 되었고, 김집(金集)·장현광(張顯光)·박지계(朴知誡) 등은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 원자보양관(元子輔養官)을 겸임시키는 등 특별한 우대를 베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