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천도호부사, 대호군, 성천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주부로 승진, 1550년(명종 5) 중부주부(中部主簿)를 거쳐 사옹원판관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충훈부도사(忠勳府都事)가 되어 정업원(淨業院)의 토목공사를 상소하여 중지시켰다. 1552년 진사시에 합격하고는 충훈부경력(忠勳府經歷)으로 승진하여 군적(軍籍)을 철폐할 것을 상소하였다.
1560년 왕의 특지로 이천도호부사가 되고 이어 대호군으로 전임하였는데, 이 때 조정의 공론이 윤원형(尹元衡)의 관작삭탈을 주장하자 이를 변호하였으나 채납되지 않았다. 이어 성천도호부사로 나갔다가 사직하고, 양주 소요산에 은거하였다.
서예에도 뛰어났는데, 서법이 매우 기이하였으며, 정백붕의 비갈(碑碣), 충훈부의 편액, 해주 부용당(芙蓉堂)의 현판 등이 그의 글씨로 알려지고 있다. 저서로는 『만죽헌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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