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덕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개항기 이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관료.
이칭
  • 백순(伯純)
  • 우전(雨田)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초계(草溪)
  • 사망 연도1883년(고종 20)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10년(순조 1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항래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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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이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관료.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백순(伯純), 호는 우전(雨田). 1850년(철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1862년 부사과로 되었으며, 고종 초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정사 서형순(徐衡淳)을 따라 청나라에 다녀왔다.

대원군이 집권하자 심복인물로서 동래부사가 되어 일본과의 교섭을 담당하였다. 대원군의 뜻을 받들어 일본 메이지신정부[明治新政府]의 국교재개의 교섭을 서계문제(書契問題)를 이유로 끝내 거부하였다. 일본과의 암거래를 하는 무리를 엄중단속하여 박승달(朴承達)을 외화 소지혐의로 참형에 처하였다.

그 뒤 이조참의가 되었다가 대원군이 실각하자 이 과정에서 파면되어 유배되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자 형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나 대원군이 물러남으로써 이에 다시 파면되어 원악도(遠惡島)로 유배된 뒤 그 곳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참고문헌

  • - 『철종실록(哲宗實錄)』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동산일기(東山日記)』

  • - 『용호한록(龍湖閒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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