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 말음 체언은 ‘ㅎ’을 어간의 말음으로 가지는 체언이다. 이 체언의 ‘ㅎ’은 환경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체언이 단독형으로 쓰이거나 관형격 조사 ‘ㅅ’ 앞에 올 때는 ‘ㅎ’이 실현되지 않았다. ‘ㄱ, ㄷ’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ㅋ, ㅌ’으로 실현되었다. 모음이나 매개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ㅎ’이 연음되었다. ‘ㅎ’을 제외한 말음이 ‘ ㄴ, ㄹ, ㅁ’의 자음이거나 모음이다. 체언의 ‘ㅎ’은 15세기부터 소실되기 시작하여 현대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암탉, 수캐, 안팎’ 등의 합성명사에 ‘ㅎ’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체언들은 ‘ㅎ’을 제외한 말음이 ‘ ㄴ, ㄹ, ㅁ’과 같은 공명 자음이거나 모음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ㅎ’을 어간 말음으로 가지면서 ‘ㅎ’을 제외한 말음이 ‘ㄱ, ㄷ, ㅂ, ㅈ’ 등인 명사가 존재할 경우 이러한 명사의 말음은 ‘ㅋ, ㅌ, ㅍ, ㅊ’ 등으로 실현되었을 것이므로 공명 자음과 모음 앞에서만 ‘ㅎ’ 말음 체언이 존재함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ㅎ’ 말음은 일부 어휘의 경우 15세기에 부분적으로 소실된 예가 나타나기도 하나 개별 어휘에 따라서는 19세기 말까지 유지되기도 하였다. 현대 국어로 오면서 어간 말의 ‘ㅎ’은 소실되었으나 ‘ᄯᅡㅎ〉땅’과 같이 ‘ㅇ’으로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세ㅎ〉셋, 네ㅎ〉넷’과 같이 ‘ㅅ’으로 교체되기도 하였다. ‘갈ㅎ〉칼, 고ㅎ〉코, ᄇᆞᆯㅎ〉팔’과 같은 예에서는 어두음이 격음화되기도 하였다.
어간 말음이 ‘ㅎ’인 체언들은 그 수가 꽤 많은데 대표적인 단어들은 “ᄀᆞᅀᆞᆯ(秋), 갈(刀), 겨ᅀᅳᆯ(冬), 고(鼻), 길(道), ᄂᆞᆯ(刃), 나(年), 나라(國), 나조(夕), 내(川), 네(四), ᄃᆞᆯ(等), 돌(石), 둘(二), 뒤(後), ᄯᅡ(地), ᄆᆞᅀᆞᆯ(村), 뫼(山), ᄇᆞᆯ(臂), 바다(海), ᄉᆞᆯ(肉), 세(三), 수(雄), 안(內), 알(卵), 암(雌), 열(十), 올(今年), 우(上), ᄒᆞ나(一), 하ᄂᆞᆯ(天)” 등이다.
이들 고유어 외에 중국어 차용어에서 기원한 ‘뎌(笛), 쇼(俗), ᅀᅭ(褥), 자(尺)’ 등과 같은 단어도 있는데 이들은 해당 한자음의 종성 ‘ㄱ’이 약화되어 ‘ㅎ’이 된 것이다. 이들 체언들은 단독형이나 관형격 조사 ‘ㅅ’ 앞에서는 ‘ㅎ’이 실현되지 않으나 ‘ㄱ, ㄷ’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는 어간 말음 ‘ㅎ’이 뒤에 오는 조사의 초성과 축약되어 ‘ㅋ, ㅌ’으로 실현되며 모음이나 매개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ㅎ’이 연음되어 나타난다. 다음은 현대 국어 ‘가을’의 선대형인 ‘ᄀᆞᅀᆞᆯ’의 예이다.
① ᄀᆞᅀᆞᆯ 오매 흥(興)이 심(甚)히 기도다(두시언해杜詩諺解 20: 35b)
② ᄀᆞᅀᆞᆳ 아오글 글히니 ᄯᅩ 새롭도다(두시언해 7: 38a)
③ 겨ᅀᅳ리어든 보돗 불휘ᄅᆞᆯ ᄡᅳ고 ᄀᆞᅀᆞᆯ콰 녀르미어든 솝니플 ᄡᅳ라(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7: 84a)
④ 변방(邊方)ㅅ ᄀᆞᅀᆞᆯᄒᆡ ᄒᆞᆫ 그려긔 소리로다(두시언해 8: 36b)
⑤ 보미 오며 ᄀᆞᅀᆞᆯ히 가매 뉘 지비 ᄃᆞ외옛ᄂᆞ뇨(두시언해 8: 42a)
①은 조사가 결합하지 않고 단독으로 쓰인 예이며, ②는 관형격 조사 ‘ㅅ’ 앞에 쓰인 예인데 ‘ㅎ’이 실현되지 않는다. ③은 말음 ‘ㅎ’이 조사 ‘과’와 축약되어 나타난 것이고, ④와 ⑤는 처소 부사격조사 ‘ᄋᆡ’와 주격조사 ‘이’에 연음되어 나타난 것이다.
‘ㅎ’을 말음으로 가지던 체언들의 흔적은 ‘암, 수, 살, 안’ 등이 선행하는 ‘암탉, 수캐, 살코기, 안팎’ 등의 합성명사에 남아 있다. 현대 국어에서 ‘히읗’이란 명사의 말음이 ‘ㅎ’으로 표기되나 이는 표기상의 문제일 뿐 실제 발음은 ‘히읗이[히으시]’와 같이 ‘ㅅ’으로 실현되므로 실제로는 ‘ㅎ’이 말음인 체언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