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자음 가운데 목젖으로 콧길을 막고 앞혓바닥을 센입천장[硬口蓋]에 넓게 대었다가 터뜨리며 날숨도 세게 내뿜으면서 내는 무성유기 경구개파찰음(無聲有氣硬口蓋破擦音)을 표기하는 데 쓰인다.
훈민정음 창제 때에는 같은 치음(齒音)에 속하는 ‘ㅈ’음보다 소리가 세게[厲] 난다고 하여 ‘ㅈ’자에 획을 더하여 ‘ㅊ’자를 만들었다. 『훈민정음』(해례본) 본문에서는 “ㅊ은 잇소리니 침(侵)자의 처음 나는 소리와 같다(ㅊ齒音如侵字初發聲).”고 설명하고, 『훈민정음』(국역본)에서는 “ㅊᄂᆞᆫ 니쏘리니 侵침ㅂ字ᄍᆞᆼ 처ᅀᅥᆷ 펴아나ᄂᆞᆫ 소리 ᄀᆞᄐᆞ니라.”라고 하여 ‘ㅊ’음의 음가를 ‘侵’자의 한자음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에서는 ‘ㅈ’음을 치음의 차청(次淸)에 소속시켜 이 음이 유기경구개파찰음임을 보였다. 이 음의 조음위치가 15세기 중세국어에서는 상치경(上齒莖, 윗잇몸)이었는데, 17세기경 오늘날과 같은 자리로 옮겨졌다는 설도 있다. 이 음은 국어의 초성과 종성(받침)에 두루 쓰이나, 종성으로 쓰일 경우에는 ‘ㄷ’음과 같이 발음된다.
한글의 이름을 처음으로 보인 『훈몽자회』(1527)의 범례에서는 ‘초성독용팔자(初聲獨用八字)’란에서 ‘ㅊ 齒’라고만 하였으나, 국문연구소의 「국문연구의정안(國文硏究議定案)」(1909)에서는 ‘ㅊ 치읓’이라고 정하였고,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도 ‘치읓’으로 정하여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자모의 순서가 훈민정음 창제 때에는 조음위치별로 되어 있어서 ‘ㅊ’자가 아음(牙音)의 ‘ㄱ’자로부터 열다섯번째였으나, 1751년의 『삼운성휘(三韻聲彙)』에 실려 있는 ‘언자초중종성지도(諺字初中終聲之圖)’에는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ㅌㅋㅍㅎ과 같이 되어 있어서 오늘날과 같이 열번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