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해룡(海龍). 황해도 옹진 출생. 1925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같은해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廣島高等師範學校]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1929년 졸업 후 함흥농업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1932년부터 1945년 10월까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1938년 경기공립고등여학교로 개명)에 재직하고, 경기도 학무과장에 취임하여 광복 직후의 중등교육행정을 맡았다.
1946년부터 1957년까지 서울중고등학교 교장직을 맡았으며, 재임기간중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라는 교훈 아래 학교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그뒤 경기중고등학교 교장, 서울사범학교 교장, 다시 경기중고등학교 교장, 삼선중고등학교 교장, 북인천중고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다음, 1961년부터 2년간 한국외국어훈련원(F.L.I.) 원장을 지냈다.
1964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교육감으로 선출되어 1965년까지 재임하였고, 1966년 경기공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1968년 일본의 과학기술교육 현황을 시찰하던 중 일본에서 죽었다.
이밖에도, 1948년 중앙교육위원회 위원에 피임된 것을 비롯하여,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서울특별시 교육국장을 역임하였고, 1950년 미국교육계 시찰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일본과 유럽의 교육계를 시찰하였으며, 1956년 필리핀에서 개최된 세계교육자대회 등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중고등교육계의 발전 및 정상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