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압해(押海). 자는 사추(士推). 정옥형(丁玉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응두(丁應斗)이고, 아버지는 정윤복(丁胤福)이며, 어머니는 한경상(韓景祥)의 딸이다. 정윤지(丁胤祉)에게 입양되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에 중훈대부 행병조좌랑지제교(中訓大夫行兵曹佐郞知製敎)라는 직함을 가지고 기사관(記事官)으로 활동하였다. 1609년(광해군 1)에 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에 정주목사(定州牧使)로 재직하고 있을 때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자청하여 진압에 나섬으로써 그 공로를 인정받아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1627년 정묘호란이 발발했을 때에 오랑캐의 침입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유배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