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전한, 상주목사, 안변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1년(광해군 3) 장령·사간을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부정을 범한 춘천부사 이원엽(李元燁), 양양현감 신경우(申景遇)를 파직시켜 지방의 관기를 바로잡았다. 1613년 집의·전한을 지내고, 1616년 사인으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당시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 대북파가 득세, 계축옥사를 일으켜 영창대군(永昌大君)·김제남(金悌男) 등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이 대두되어 정세가 크게 혼란하자 상주목사로 나가면서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은퇴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다시 기용, 안변부사로 있을 때 이괄(李适)의 역모를 알리는 고변서에 그 이름이 기재되었으나, 아우 정호서(丁好恕)가 정주목사로서 이괄의 사자를 베고 군사를 일으켜 근왕(勤王)을 함으로써 화를 면할 수 있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파수대장(把守大將)으로 좌도의 병사를 거느리고 죽령(竹嶺)에 진을 쳤다가 강화가 성립되어 철수, 이듬해 병으로 사임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우복집(愚伏集)』
- 『창석집(蒼石集)』
- 『순암문집(順菴文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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