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감로(濟衆甘露)』는 1872년부터 1875년에 걸쳐 7처(處) 11회(會)의 묘련사(妙蓮社) 법회에서 감로법주인 보월거사 정관이 관세음보살의 감응을 받은 내용을 4권 10품(品)으로 기록한 불교서이다. 1877년 겨울에 부우제군(孚佑帝君) 여순양(呂純陽)이 무상단(無相壇)에 강림하여 서문이 지어진 뒤, 1878년 봄에 간행되었다.
『제중감로』의 목판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부산대학교 도서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제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제중감로』의 필사본 1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표제가 ‘감로목록(甘露目錄)’인 필사본은 서두에 서문 · 연기 · 목록에 이어 권1 「고해자우품(苦海慈雨品)」부터 권2 「반본환원품(返本還源品)」까지의 내용이 목판본과 동일한 10행 20자로 정서(淨書)되어 있다. 그런데 권2 제6품인 「묘현수기품(妙現授記品)」에 별게(莂偈)를 받은 143명의 법명(法名)이 새겨져 있는 목판본과는 달리, 필사본에는 이들의 실명이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묘련사 법회에 참여한 인물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감로법주(甘露法主)인 보월거사 정관(正觀)의 승선(承宣)으로 권1과 권2는 보광거사(葆光居士) 보원(普圓)과 인담거사(印潭居士) 성월(性月), 권3과 권4는 해월거사(海月居士) 성담(性湛)과 현허거사(玄虛居士) 자운(慈雲)이 봉휘(奉彙)한 것이다. 필사본에는 ‘우바새(優婆塞) 정정신(丁正信) 승선’으로, 권1은 ‘가라월(迦羅越) 서성월(徐性月)’, 권2는 ‘근사남(近事男) 유보원(劉普圓)’이 참정(參訂)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제중감로』의 편찬은 감로법주 정학영(丁學泳)을 비롯한 유성종(劉聖鍾), 서윤구(徐潤九), 유희제(劉熙濟) 등의 거사(居士)들이 주도했다.
책머리에 순양자(純陽子)의 서문과 1878년 1월에 인가거사(印伽居士)가 쓴 연기(緣起)에 『제중감로』의 편찬 배경이 자세하다. 1872년 11월에 묘련사(妙蓮社) 법려 여러 명이 삼각산(三角山) 감로암(甘露庵)에서 첫 정진 법회를 열어 1875년 여름까지 감로암, 해인장자(海印長子) 집, 담연단(湛然壇), 보련정실(寶蓮淨室), 여시관(如是觀), 삼성암(三聖庵), 진국사(鎭國寺) 등의 7곳을 돌며 11차례 법회를 가졌다. 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전체 10품 4권으로 편집하였다. 3년 뒤인 1877년 겨울에 판각해서 유통시키려 할 때 부우제군(孚佑帝君) 여순양(呂純陽)이 무상단(無相壇)에 강림하여 서문이 지어진 뒤, 1878년 봄에 간행을 마쳤다.
4권 2책.
1872년 겨울 삼각산 감로암에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일심으로 부르며 감응을 기원하였을 때, 보살이 감로법주인 보월거사에게 강령(降靈)하여 「고해자우품(苦海慈雨品)」을 설하였다. 다음 해 봄 감로암에 다시 모여 기도할 때 보살의 강령으로 「십종원신품(十種圓信品)」을 설하였으며, 그해 가을 해인장자 집에서 「보광연화품(普光蓮華品)」을 설하였다. 또, 그해 겨울에 담연단에서 「일체원통품(一切圓通品)」을, 보련정실에서 「여시게찬품(如是偈讚品)」을, 1874년 봄에 다시 감로암에 모여서 「묘현수기품(妙現授記品)」을 설하였다. 여름에 여시관에서 「반본환원품(返本還源品)」을 설하였으며, 가을에 삼각산 삼성암에서 「무진방편품(無盡方便品)」을 설하였다. 1875년 봄에는 진국사에서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을, 다시 담연단에서 「전불가설품(轉不可說品)」을 설하였고, 그해 여름 여시관에 모여 품의 이름을 정할 때에도 관음의 감응에 의하여 정하였다.
그 내용은 관음신앙과 자비를 바탕으로 하여 모든 대승경전에 나타난 불 · 보살의 원력(願力)을 배워서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보현보살의 10종 대원(大願), 지장보살의 다함 없는 원해(願海), 아미타불의 48대원, 약사여래의 12대원 등을 열거하고 닦을 것을 권하였는데, 그 이상을 모두 극락왕생에 귀착시켰다. 또한 「묘현수기품」은 그 모임의 법려(法侶)인 보원, 성월, 성담, 정신, 법계심(法界心), 도신(道信), 성공(性空) 등 143명에게 관세음보살의 감응에 의한 게송을 하나씩 내려 준 것이다.
이 책은 조선 말 한양에 사는 재가 거사들이 묘련사 법회를 통해 관세음보살 칭명 염불로 감응을 받은 내용을 기록한 일종의 불교 강필서로, 우리나라에서 찬술된 불교 문헌 중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편찬 방식이다. 이 책 간행에 참여한 인물들은 당시 관성제군(關聖帝君), 문창제군(文昌帝君), 부우제군의 삼성제군(三聖帝君)의 책을 간행했던 한국 최초의 도교 난단(鸞壇)인 무상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