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충렬왕이 1284년(충렬왕 10) 그의 원찰(願刹)로 창건하였다. 개산조(開山祖)는 홍서(洪恕)이나, 이 절에서 열었던 신행결사(信行結社)인 묘련결사(妙蓮結社)의 주맹(主盟)은 원혜국사(圓慧國師)가 맡았다.
1302년(충렬왕 28) 왕이 월출산 백련암(白蓮庵)으로 사람을 보내어 무외(無畏)를 이 절로 초빙한 뒤 결사의 주맹으로 삼았다.
이 절은 『법화경』을 강하여 널리 천태사상(天台思想)을 선양하는 중심사찰이 되었으며, 천태종의 결사도량인 백련사(白蓮社)의 분원 역할을 맡게 되었다.
1336년(충숙왕 복위 5)원나라로부터 귀국한 의선(義璇)의 청을 받아들여 절을 크게 확장 중수하였으며, 이 절을 중심으로 다시 개경에다 『법화경』에 대한 신앙을 크게 펼쳐 나갔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 말에는 충렬왕과 충선왕·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의 영정을 모신 영당(影堂)이 있었으며, 여기에는 찻물을 담는 돌그릇 석지조(石池竈)가 있었다.